2009년 4월 1일 수요일

"여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25년간의 논쟁"

여이연 2007 여름강좌
- 섹슈얼리티 I
강사: 박이은실 (여이연)

<강좌 자료>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Feminism and Sexuality) / 스테비 젝슨(Stevi Jackson), 수 스캇(Sue Scott), 1996
"성적인 논쟁지점과 여성주의 내의 분파들: 여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25년간의 논쟁"
번역: 여이연 섹슈얼리티 세미나팀

섹슈얼리티는 여성주의자들에게 핵심적인 정치적 사안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고, 또한, 여성주의자들이 각 분파로 나눠지는 빌미가 되어오기도 했다. 성적 활동과 성적 정체성은 다른 사회보다 서구사회에서 보다 더 논쟁적인 사안이라는 것과 이 사안에 대해 수많은 공적 토론이 서구사회에서 진행되어 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사실이 놀라울 일은 아닐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예를 들어, 스스로의 사적 성행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포르노그래피, 매매춘, 성폭력, 동성애와 레즈비어니즘 등과 같은 공적 사안들에 대해 여성주의 특유의 뚜렷한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한 번도 이에 대한 단일한 입장을 가져보지 못했다. 사실 섹슈얼리티는 19세기부터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각기 다른 의견들이 경합해온 영역이다. 섹슈얼리티가 근대 사회운동에서 주요한 관심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과 동시에 이에 대한 서로 합의될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다른 주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독본을 묶어내는 목적은 197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섹슈얼리티에 관한 다양한 여성주의 논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지면상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여성주의 이론과 정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난 25년간 일어났던 관점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글들을 이 독본에 포함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여기서 토론하고자 하는 사안들에 관해 우리 자신의 의견이 있고, 또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겠지만, 우리와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공정하고 분명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 영역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써왔던 저술의 절대량을 감안할 때 이 독본을 위해 글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판사들의 출판목록을 잠깐 들여다보기만 해도 섹슈얼리티가 이제 특정 학문 안에서건 혹은 학제간에서건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제2세대(the 2nd Wave) 여성주의'의 등장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고, 이러한 관심의 근본적인 취지는 여성해방운동과 게이해방운동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기원을 둔 것이었다. 최근 몇 해 동안 여성주의학자들과 게이학자들은 섹슈얼리티를 학문적인 의제로 만들고, 연구과제, 이론, 강의내용을 개발하는 데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런 새로운 학문적 분위기는 비교적 먼저 나타난 성과학적 전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과학은 섹슈얼리티를 생물학적 혹은 심리학적 현상으로서 다뤘고,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이성애적 규범에 기반해 그것과 다른 섹슈얼리티는 모두 병리적으로 취급하는 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삼아왔다. 최근에는 인간 섹슈얼리티가 사회/문화적으로 모양지어진다는 관점들이 더욱 우선시되고 있다. 이 관점들은 남성주도적인 이성애적 관계를 전혀 이상이 없는 하나의 규범으로서 다루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은 게이 관점보다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여성주의적 관점과 게이 관점 사이의 관계가 여성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될 때는 게이 관점도 다룰 것이다.

이 소개글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섹슈얼리티가 여성주의자들에게 정치적 사안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뒤에 나타난 사상의 서로 다른 가닥들도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그전에 먼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을 정의하고 시작해야겠다. 성(sex), 성별(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가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합의도 된 것이 없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이 개념들을 종종 구분해서 사용한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성(sex)'과 ’성적(sexual)'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이 개념들은 남녀 사이의 서로 다른 신체적 특성과 친밀한 성애적 행위 둘 다를 가리킨다. 앤 오클리Ann Oakley(글 1.1)는 이 이중적 의미에 대해 짚으면서 친밀한 성애적 행위의 측면에서 성적(sexual)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서로 다른 신체적 특성을 가진 두 성(sexes)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간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오클리는 서구문화에서 흔한 이성애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오클리의 관점처럼 '성(sex)'을 ‘성적 행위(the sex act)'로 정의내리고, 그럼으로써 성을 이성애적 성교로 정의내리는 관점은 많은 다른 여성주의자들이 문제삼아왔던 바로 그 지점이다. ‘섹슈얼리티’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는데, 성애적 욕망, 행위, 정체성을 두루 일컫는 개념이다. 때로 이 말은 스스로에 대해 여자 혹은 남자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모든 측면들을 통틀어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성별(gender)’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섹슈얼리티’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에서 성애적인 측면을 일컫기 위한 개념이 된다. 이런 면에서,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은 다소 유동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성애적이라는 것, 따라서 성적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 성애적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역겨운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또 어떤 이에게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성애에 관한 여러 서로 다른 견해들은 프로노그래피같은 사안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극도로 격렬히 논쟁하게 만들어 왔다. 이렇게 이렇다하고 깔끔하게 정의내리기 힘든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섹슈얼리티가 단지 ‘성행위’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성적인 느낌, 성적인 관계,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성적이거나 혹은 성적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방식, 스스로를 성적이거나 혹은 성적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성별(gender)’이라는 개념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타고난 것이라는 생각을 문제삼기위해 여성주의자들이 채택한 개념이다. 때때로 ‘성(sex)'들의 차이는 여자와 남자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를 말하고, ‘성별(gender)'은 여자와 남자를 사회적으로 구분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가리킨다. 모든 여성주의자들이 이 구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물질적인 몸이 가지는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면에 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어떤 이가 신체구조학적으로 특정 성(sex)이다고 보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후자의 관점을 지지한다.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분석적으로 구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두 개념이 실질적으로는 서로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사실, 바로 이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섹슈얼리티가 결정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이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과 여성 의 사회적 특성과 이 사이의 위계적 관계가 우리의 성적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이성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생각같이 다른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성애적 태도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특성과 이 사이의 위계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처럼, 레즈비언과 게이 섹슈얼리티도 넓은 의미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성별과 섹슈얼리티는 ‘인종’과 계급같은 다른 사회적 구분과 교차해서 한 사회 안에서도 우리들 각각은 각각 다른 지점들에서 섹슈얼리티를 영위한다. 따라서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여성들 각각의 경험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과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모든 여성들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목적인 여성운동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은 결정적이고, 상당히 분열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이 되어왔다.
개인적인 것 정치화하기

섹슈얼리티가 왜 주요한 여성주의 사안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조대에서 재산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여성을 일부일처제의 이성애적 관계를 통해 한 남자에게 묶어두기 위해 역사적으로 엄청난 노력이 기울여져 왔다. 이중적 성도덕규범은 여성에게는 부인된 성적 자유를 남성에게 부여해 왔다. 또한 여성들을 존중받을만한 마돈나와 끔찍이 불쾌한 창녀라는 두 범주로 분류해 왔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달리 감시되고 규제되어왔다. 여성 ‘매춘부’는 낙인찍히고 처벌받지만, 그녀가 상대해준 남성 고객은 그렇지 않다. 이성애 행위는 언제나 여성에게는 ‘명예’를 잃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생식력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리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위험한 것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의 성폭력과 강압에 의한 피해를 쉽게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으면서, 한편, 그녀 자신의 행위와 가해자의 행위까지 책임을 지게끔 되어왔다.

제1세대 여성주의자들은 이 중 많은 사안들에 대해 운동해 왔지만, 그들이 택한 운동방식은 제한된 경제적 독립의 기회와 생식에 대한 제한된 자기통제 기회같이 그들이 살고 있던 물적 환경과 만연해 있던 성도덕의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이중적 성규범에 맞서기 위해 즉각적으로 실천가능했던 전략은 여성의 성적 자유를 확장하는 요구보다 남성의 더욱 철저한 정조관념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제2세대 여성주의가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맥락은 매우 달랐다. 제2세대 여성주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여성주의적 관점을 만들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시대에 비해 이례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했고, 더 큰 교육의 기회를 가졌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노동과 교육 양 영역에서 여전히 불이익을 받았고, 여성의 영역은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여전히 굳건했다. 1960년대는 서구에서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완전고용이 이뤄졌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주요한 정치적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경제적 번영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빈곤은 이때 ‘재발견’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소수민족들은 완전한 시민권에서 배제되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 유권자들은 여전히 선거권을 박탈당한 채였다. 이에 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민권 운동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모든 젊은 정치운동가들에게 중요한 훈련장이 되었다. 서구 국가들 전체에서 베트남전 반대와 여러 가지 부정의와 제국주의적인 사례에 대한 저항이 조직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좌파 정치가 부활했다. 1968년 유럽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주의적인 새 사회주의정부를 소련이 진압을 했고, 파리에서는 학생총항쟁과 총파업(general strike)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좌파운동은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여성주의 새로운 세대는 대부분 이 ‘신좌파(New Left)’를 통해 등장했다. 신좌파운동을 통해 정치적이된 많은 여성들은 좌파운동 안에서 남성들이 결정권을 갖는 반면 자신들은 부차적인 보조자 역할을 맡고 조직 안에서 주변화되어왔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형태의 불평등과 싸우는 동안에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은 대부분 간과되었는데, 전적으로 묵살되거나,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거나, ‘혁명 이후’에 해결할 문제로 규정되었다.
‘신좌파’와 ‘구좌파’는 여성이 겪는 억압에 대해 공통적으로 무감각했지만, 다른 여러 측면에서는 서로 달랐다. 결정적으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그러했는데, ‘신좌파’들은 훨씬 더 자유의지주의적 입장을 가졌고, 특히 동구권, 국가사회주의자, 국가 등의 권위주의적 체제에 반대했다. 이와 함께, 사적인 삶의 변화가 바람직하고,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개인의 성취, 쾌락, 자유를 혁명의 정당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 좌파 내부와 외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1960년대의 소위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었다. 이것이 혁명적 변화인지 아니면 단지 기존에 있어왔던 경향이 계속되는 것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 기간에 먹는 피임약 같이 훨씬 더 손쉽게 피임을 할 수 있게 된 것 등 더 큰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예견하는 몇 가지 발전들이 있었다.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성적 사안들에 관계된 허용적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 극장 검열이 폐지되었고, 낙태와 이혼이 자유로와졌으며, 21세 이상 성인 남성간의 합의된 동성애행위가 비범죄화되었다. 전체 대중이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지만, 젊고 독립적이고 정치화된 이들은 성적으로 자유의지주의적인 사고가 대세였던 폭넓은 사회적 맥락의 변화를 충분히 경험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좌파진영 내 여성들에게도 확실히 영향을 미쳤고, 이 후에 진행된 성혁명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좌파 내에서 공유되던 성해방에 대한 새로운 이상과 다양한 반문화운동(counter-cultural movement)은 새로운 자유를 약속했다. 결혼은 사람을 소유관계로 전락시키는 부르주아적 제도로 비난받았고, ‘자유연애(free love)’가 장려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성과 남성을 잠재적으로는 같은 위치에 놓고, 기존의 이중적 성규범에 도전하며, 성그 자체가 즐길만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남녀에게 각각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 많은 여성들이 이때를 되돌아보면서 ‘성해방’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접근기회가 커졌음을 뜻했고, 여성들이 ‘해방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까 하는 걱정으로 남성의 요구에 대해 ‘싫다’라고 말할 권리를 빼앗긴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꼈다. 당시 한 여성주의 만화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들은 나를 불감증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지금은 나를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자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이 좌파 조직들 내에서의 여성과 여성 관련 사안의 주변화에 대한 것과 함께 여성주의적 비평의 동력이 되었다. 마지 피어시Marge Piercy는 그 때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남성은 여성과 함께 잠자리를 가짐으로써 그녀를 조직 안으로 데려올 수도 있고, 그녀와 더 이상 자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조직에서 제거할 수 있다. 남성은 그녀가 지겨워졌다거나, 연습으로 만났다고 하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조직에서 추방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은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억지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on Committee, 이하 SNCC)의 스토클리 카미챌(Stokely Carmichael)은 공개적으로 ‘SNCC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대주는 (prone) 것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그녀들이 주도하는 독자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섹슈얼리티를 핵심 사안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위 성혁명의 몇몇 결과들이 여성들에게 문제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섹슈얼리티가 정치적 사안이 되는 길을 연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부정적인 결론까지도 저항의 가능성과 대안적이고 여성주의적인 관점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성과 재생산의 분리, 성적 쾌락과 자유에 대한 강조, 결혼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비판 등과 같은 신좌파의 자유의지주의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요소들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남성 섹슈얼리티의 강제적이고 약탈적인 측면을 문제삼아 왔다. 이것은 여성들이 단순히 남성들의 성적 접근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었고, 침대 안이나 밖에서의 남성들과의 관계의 질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성주의자들은 또한 정치적 분석은 반드시 개인적 삶의 방식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신좌파적 견해를 견지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이 보다 더 많은 것을 뜻한다. 여성들은 여성들 개인이 각각 겪는 많은 문제와 불안을 다른 여성들도 공통적으로 겪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 문제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근본적으로 그 문제들은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을 정치적 사안으로 보게 되면서 우리는 정치 자체의 경계를 재규정하게 되었다. 여성들만의 조직(Women-only groups)과 의식화의 실천이 이 과정의 중심에 놓였다. 따라서, 의식화 과정은 자기만족적인 집단적 자기반성 행위가 아니었다. 반대로, 개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목적은 각자의 경험을 모으고, 우리가 공유하는 기반을 찾고, 그것을 정치적 분석과 행동의 토대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기존에 정치적인 공적 영역의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간주되어온 삶의 지점들이 정치적 의제로 놓여졌다. 예를 들어 이제 ‘가사노동의 정치학’ 또는 ‘오르가즘의 정치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되었다. 섹슈얼리티의 여러 측면들이 토론과 분석의 대상으로 자리잡혔다. 여성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이중적 성규범을 공격했고, 섹슈얼리티는 여성에게 나쁜 것이며 오직 ‘나쁜’ 여성만이 성적이라는 관점에 도전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운이 좋아야) 전희 후 삽입이라는 고정된 이성애적 성행태에 한정되지 않는 성적 쾌락의 행태를 경험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남성 욕망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바라 볼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남성과의 강요된 성관계에 대한 여성들 사이의 공통된 경험은 ‘정상적’ 이성애와 강간 사이에 있는 성적 강압과 폭력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게 했다. 여성주의자들은 또한 미인대회, 화보, 포르노그래피 등을 통해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과 매매춘을 통해 섹슈얼리티가 상품화되는 것을 공격적으로 비판했다. 이 모든 것은 이성애적 관습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기여했고, 궁극적으로 이성애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에 기여했다.

이후 여성주의 논쟁의 중심이 된 사안들의 대부분은 여성해방운동(WLM) 등장 이후 몇 년 사이에 이미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성주의 내부의 정치적 차이를 드러나게 한 긴장들 역시 이 시기에 이미 확연히 드러났다. 여성주의자들은 현재의 이성애적 관계가 갖는 질서는 여성에게 해로우며 여성종속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변화를 위해 우선시되어야 할 지점들과 이를 위한 행동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다른 분열된 길들을 따라왔다. 이 책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억압된 것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지에 대한 논쟁, 이성애 여성주의자들과 레즈비언 여성주의자들 사이의 차이들, 쾌락으로서의 성과 권력으로서의 성 사이의 긴장, 포르노그라피와 매매춘을 어느 정도로 여성에게 억압적인가에 논쟁과 같은 몇몇 주요 논쟁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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