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일 수요일

"생물학적 결정론 문제삼기"

여이연 2007 여름강좌
- 섹슈얼리티 I
강사: 박이은실 (여이연)

<강좌 자료>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Feminism and Sexuality) / 스테비 젝슨(Stevi Jackson), 수 스캇(Sue Scott), 1996
"본질주의 대 사회적 구성주의: 생물학적 결정론 문제삼기"
번역: 여이연 섹슈얼리티 세미나팀

섹슈얼리티를 정치적 사안으로 만들면서 여성주의자들은 섹슈얼리티는 변화하며 따라서 성적 욕망과 실천이 자연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기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정을 문제삼을 수 있는 개념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삼기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걸쳐 제기되었다. 여성해방운동(WLM)은 여성종속을 낳은 조건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만약 그 조건들이 자연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일 것이다. 반대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그것의 기원이 사회적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크리스틴 델피Christine Delph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적이어서 불가피하거나 혹은 불가피한 것이어서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지 않는다.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아닌 것은 자연적이 아닌 다른 것, 즉, 그것이 자의적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반발심처럼, 여성들의 반발이 가지는 논리적이고 필연적 함의는 그 상황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곧 그 상황이 사회적이라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결정론을 문제삼는 것은 여성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전략이지 단순히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관련된 것이 행위성(agency)과 구조(structure)의 문제이다.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할 때, 생물학적 결정론을 또 다른 형태의 결정론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섹슈얼리티를 강제하는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관습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거기에 더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이러한 제약 속에서 성적 실천에 관해 협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해야한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사회구조와 행위자(agent)로서의 우리 자신과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변화를 위한 어떤 전략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여성주의 성정치학은 우리가 하는 선택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편, 여성주의자들은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복잡한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해 인식해 왔고,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개별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인식해 왔다.
여성억압의 기원이 사회적이라는 믿음은 모든 여성주의자들이 공감했고 또 공감하고 있지만, 이 가정에 대한 분석 방식은 항상 서로 달랐다. 게다가 각각의 분석방식은 지난 몇 십년동안 더욱 발전했다.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 섹슈얼리티의 현 형태가 탄압적이고 따라서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항상 섹슈얼리티 자체에 대한 분석의 발달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개량주의적(reformist) 여성주의자들은 강간 피해자의 치료나 성희롱과 같은 문제들에 관련된 법률적 또는 관료적 변화에 더 초점을 두어 왔다. 좀 더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여성주의자들도 이런 사안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섹슈얼리티를 좀 더 근본적으로 사회문화적 질서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 사안들을 이 맥락 안에서 보고자 한다.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론화해 왔던 대부분의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급진적인 경향을 가진 이들이다. 대다수의 이 이론가들은 섹슈얼리티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개념화해 왔지만, 정확히 그 구성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또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제되고 억압받아온 진정한 여성적 섹슈얼리티가 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의견도 항상 있어왔다.
많은 여성학 교재에 제시되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이런 관점의 차이는 사회주의 적 여성주의, 후기구조주의적 여성주의, 포스트모던 여성주의를 한 편에 두고, 급진적 여성주의를 다른 한편에 두는 구분에 따라 무리없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는 섹슈얼리티가 자본주의에 의해 억압되어 왔다고 보는 전통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기 위해 억압(repression)을 중심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이론인 정신분석학으로 돌아섰다.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본성과 본질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믿기 때문에 종종 본질주의자로 잘못 재현되기도 한다. 본질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급진적 여성주의자들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이와는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차이’가 있다는 학설에 항상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급진적 프랑스 여성주의 전통을 잇고 있는 이 중 하나인 크리스틴 델피는 이미 앞서 언급했다. 영국에도 본질주의에 강하게 반대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의 흐름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특히 오인받고 있는 집단이 몇몇 북미 여성주의자들인데, 안드레아 드워킨Andrea Dworkin이 한 예이다. 기록 상에서 봤을 때, 그녀는 여성이 본질적으로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근본적으로 반대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종종 본질주의자로 분류되어 왔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견해와 태어날 때부터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다른 이론적, 정치적 구분을 가로지르며 나타난다. 강조할 지점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도 여성주의자들의 글에 나타난다. 섹슈얼리티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이들은 사회적 구성의 어떤 측면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세 가지 주요 분석 요소를 중심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첫 번째는 남성 지배의 문제를 가장 우선시 하면서 가부장적 구조와 관련지어 섹슈얼리티를 분석한다. 두 번째는 개별 주체의 수준에서 성적 욕망이 어떻게 구성되는 지에 집중하는데, 곧, 어떻게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성적(sexual)이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성적 욕망의 다양성(variability)과 유연성(malleability)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비록 여성주의자들이 많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각각의 분석 요소에 기여해 왔지만, 특정 이론집단은 세 분석 요소 중 하나와 주로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은 주로 첫 번째 요소와 관련되어 있고, 정신분석학적 여성주의자들은 두 번째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세 측면 모두를 연결하고 있는 지점을 찾고자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것이 앞으로 여성주의 섹슈얼리티 이론을 위해 가져가야할 최선의 방향일 것이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의 이해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 중 인간 섹슈얼리티의 유연성이라고 규정된 세 번째 입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섹슈얼리티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가변적이라는 생각은 모든 사회구성주의에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섹슈얼리티가 모든 문화에서 같지 않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효과적인 반론을 펼칠 수 있다. 게다가 변화해 왔다는 것이 보여진다면, 이것은 미래에 또 변형될 수 있다는 잠재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다양한 이론적, 정치적 신념을 가진 여성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섹슈얼리티가 취한 다양한 형태에 대한 지식의 축적에 공헌해 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 첫 부분의 세 글들은 이렇게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서로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이해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최소한 1930년대 이후 다른 사회들에서 성별과 섹슈얼리티가 조직된 방식을 살펴보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남성과 여성이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포함해 각기 다른 사회에서 남성적 또는 여성적 특성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미드는 뉴기니(New Guinea)의 세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각 사회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해 매우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앤 오클리Ann Oakley는 이 관점을 잇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모든 문화가 성별이라는 한 쌍의 양극적인 특질이 각각 여성과 남성에게 영구적으로 체화되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서구적 개념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모든 문화가 반드시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내적인 인간 본질이라고 보는 것도 아니다. 초기 인류학자들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성 관습을 목록화한 후, 최근의 연구는 성적 행위를 성립시키는 무엇인가를 사전에 확연하게 결정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넓게는 문화적 맥락과 당장은 대인관계적 맥락에 따라 특정 행동에 주어지는 의미가 있고, 어떤 것이 성적(sexual)인지 아닌지는 이 의미에 달려 있다.
이 같은 분석은 더 이상 우리가 섹슈얼리티를 우리가 표출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도록 억압받는 어떤 내적 욕망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슷한 결론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빅토리아 시대는 성이 억압되었던 시대로 간주되고, 이것이 성적인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허용적인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성이 벗어나게 되었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은 어떤 주어진, 따라서, 자연적인 섹슈얼리티가 도덕적 관습과 제약에 의해 규제되어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미 몇몇 이론가들이 이런 관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1970년대 후반의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의 저작은 섹슈얼리티의 역사에 대해 광범위한 재고를 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푸코는 섹슈얼리티가 권리박탈과 금지를 통해서 규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법규와 격려를 통해 생산도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라고 듣는가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되는 지를 보게 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19세기가 성적인 것에 대해 침묵했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행동과 기질을 목록화하고 분류하여 새로운 성적 어휘들을 탄생시키는 등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담론의 ‘광범위한 폭증’이 있었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이 때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섹슈얼리티의 개념이 나타났고, 이 때 색광(nymphomania), 동성애(homosexuality), 시간증(necrophilia)과 같은 다양한 범주의 섹슈얼리티들에 이름붙이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특정 행동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 내면의 본질로서 생각되었다. 따라서, 이제 동성애자로 존재(be)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규제양식으로서, ‘병리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을 구분하고 분류해서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성과학이 등장했다. 따라서, 섹슈얼리티는 점점 더 의학적 시선에 영향을 받았고, 더 이상 단순한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동시에 섹슈얼리티가 정체성의 토대가 된 것은 그렇게 정체화된 이들로 하여금 부정적으로 정의되는 것에 저항하고 대안적인 정의방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성애를 하나의 사회적 범주로 정의 내렸던 과거의 역사 없이는 동성애 해방운동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푸코 자신은 성별에 별 관심을 쏟지 않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를 단지 여러 많은 규제 가운데 하나로 여겼지만, 여성주의자들은 그의 연구가 매우 유용하다고 여긴다. 특히 푸코의 연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단순히 억압되어 왔다기보다는 복잡하고 종종 서로 모순되는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또 재구성된 것으로 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음탕한 유혹자로 인식되던 여성이 19세기에 어떻게 ‘타고난’ 순수의 관념으로 이해되는 식으로 변한 것인지에 대해 보다 상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을 이전에는 자유로왔던 성에 대한 표출에 대한 억압이라고 보는 것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관점은 첫째, 이전 세기에 여성에게 가해진 규제양식을 간과하는 것이고, 둘째,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복합적으로 구성했던 의미들의 다양성을 감추는 것이다. 여성은 독립적인 성욕이 없는 무성적인 존재이지만 자신의 성적 기관들에 의해 좌우됨으로써 섹슈얼리티로 가득찬 존재로 생각되었다. 스스로의 욕망은 없어도 유혹당하기 쉽고 따라서 자신의 위치에서 쉽게 쫒겨나 ‘타락한 여자’가 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설사 ‘순수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월경같은 여성 몸의 기능은 다른 것을 오염시키고, 여성의 재생산 기관은 규칙적으로 배출이 필요한 배수구로 여겨졌다.
여성의 복잡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은 19세기 출산과정에 대한 의료적 개입에 관한 푸비Poovey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회구성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이 시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쉴라 제프리Sheila Jeffery는 레즈비어니즘이 어떻게 고안되었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여성들 사이의 절친한 우정이 병리화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제프리는 가부장적 권력의 발현인 이성애 속으로 여성이 포섭되는 것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이 점이 그녀의 입장이 푸코적 관점과 다른 지점이다. 푸코는 권력을 훨씬 흩어져 있고, 다면적이며, 다양하게 산재되어 경험되는 속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개념화했다. 푸비는 푸코의 역사적 분석에 영향을 받았지만, 특정한 사회관계 속에서 권력을 유지시키는 물적 근거에 관심을 갖었다. 그녀는 권력을 확산되고 다양화되고 다양한 추론적 실천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개념화시켰다. 푸비는 푸코의 역사적인 분석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특정 사회관계에서 권력이 갖는 물적 근거에 또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러한 논쟁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구성물이고,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역사적으로 변화해 온 것이라면,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우리 개개인의 욕망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문화와 동시대가 구성해낸 섹슈얼리티를 그저 내면화해 표출할 뿐인가 아니면 문화적 관행과 개인의 주체성과의 관계는 덜 기계적이고 훨씬 열려있는 것인가? 여성주의는 개인의 섹슈얼리티가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에 의해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 사회문화적 구조와 개별 행위성을 모두 아우르며 이론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이 당면한 과제이다. 이 중 이 사안을 현저하게 눈에 띄게 다루는 기존 이론이 정신분석학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남성성기 선망에 의해 형성되고, 불가피하게 수동적이고 피학적이라고 봤던 프로이드의 관점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여성혐오주의적 관점이라고 보았다. 이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Jacques Lacan에 의해 고무된 몇몇 여성주의자들은 프로이드의 관점을 문자그대로보다는 상징적으로 해석하면서 프로이드의 공헌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 관점의 매력은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구조를 강조하는 점이다. 우리는 문화적 구조와 언어적 구조 안에서 성이라는 주체(sexed subject)가 되어 위치지어지고, 문화적, 언어적 구조 안에서 이 주체는 불확실한 성취로서의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재현하게 되는 것이다. 라깡적 정신분석학도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면) 상징적인 남성 성기를 문화의 중심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다. 라깡의 영향을 받은 몇몇 여성주의자들은 이점 때문에 대안적인 이론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를 위한 하나의 가능성은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중심에 놓고 그것에 비교된 것으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하기보다 여성 몸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남성성기적 특권을 문제삼는 것이다. 이것이 루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가 특별히 관심가져온 지점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정신분석학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정신분석학은 주체에 대한 보편이론을 내놓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것으로서 보는 역사적 관점과 양립하기가 어렵다. 라깡적 관점에서 성화된(sexed) 욕망 주체는 언어와 문화 속으로 편입되어야 비로소 구성되는 것이라고 볼 때도 특정 언어와 문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발화 주체’가 되는 바로 그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떤 본질적인 전문화적인(pre-cultural) 여성섹슈얼리티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남성성기중심성을 문제삼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정신분석학은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우리의 ‘선택 대상’인 성별로 환원해서 합성하기 때문에, 남성화된 여성 혹은 여성화된 남성이라는 관념 따위로 퇴보해 생각하지 않고서는 레즈비언적 욕망과 동성애적 욕망에 대해 적합한 설명을 내놓을 수가 없다. 정신분석이론에서 여성으로 존재하기는 곧 남성을 욕망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성을 욕망하는 여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학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여성주의적 이론화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개인의 성적 욕망을 설명할 수 있는 마치 유일한 관점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아마도 그 영향력은 부분적으로는 그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론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합하지 않거나 개발이 덜 된 상태다. 사회화에 관한 전통적인 사회과학 이론들은 너무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이어서 외면되어 왔다. 몇몇 여성주의자들은 상호작용주의적 전통에 기반해 성적 의미의 협상에 집중해서 개인 주체를 스스로의 성적 주체성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능동적인 행위자로 위치시킨다. 다른 여성주의자들은 푸코의 관점을 가져와 주체성의 문제에 대해 답하려고 해왔다. 예를 들면 웬디 홀웨이Wendy Hollway는 남성과 여성이 각자 접근가능한 담론 내에서 스스로를 성적 주체와 객체로 위치짓는 방식을 분석한다. 이 관점들 중 어느 것도 충분히 발전된 것은 아니며, 두 관점 모두 중요한 개념상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즉, 이 관점들은 주관적(subjective) 그리고 간주관적(intersubjective) 과정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남녀 사의의 권력관계에 대한 구조적 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을 대신할 설득력있는 대안의 부재는 여성주의이론의 주요한 결함이며, 이 점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관심이 쏟아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여성주의자들이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구성에 관해 과거에 해놓은 작업들을 재평가하고, 그것의 장단점을 평가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서 특히 다이애나 퍼스Diana Fuss가 제기하는 질문은 본질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가와 우리가 본질주의와 구성주의라는 그릇된 이분법을 취하는 위험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캐롤 밴스Carole Vance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각각 다른 정도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성적 욕망을 구성된 것으로서 개념화하는 이론들이 섹슈얼리티를 탈체화(disempbodied)된 것으로 다루면서 몸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여기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고 여성주의자들이 이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은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실재로서 경험되는 몸 자체가 한편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안 중 하나는 여성주의자들이 인간과 동물 사이를 사회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의 대조적 관계로 놓음으로써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논쟁을 발전시켜온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의 마지막 글에서 린다 버크Lynda Birke는 우리가 동물에 관해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며, 그렇게 했을 때 사회구성주의이론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는 굳건하게 사회구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이것이 여성주의를 위해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주의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이것은 문화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어떻게든 오염되지 않은 ‘자연적’ 섹슈얼리티가 있다는 알아낼 수 없는 가설에 의존해 있다. 그 결과 그것은 인간 섹슈얼리티의 문화적, 역사적 변화를 적절히 설명해 낼 수 없다. 차별적 억압이란 이런 복잡한 변화를 설명해내기에는 너무 부족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부정적인 힘으로 개념화해서 섹슈얼리티의 형성에 있어서 그것이 생산적인 힘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용납하지 않는다. 본질주의적 관점은 남성성 안에서의 차이와 여성성 안에서의 차이를 ‘자연적인’ 차이 혹은 차별적인 억압 이외의 측면에서는 설명해 낼 수 없다. 이 관점에서는 여성과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고 어떤 것도 이것을 바꿀 수 없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섹슈얼리티보다 훨씬 억압받아왔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더 억압받아왔다는 관점은 현재의 남성 섹슈얼리티를 억압받지 않은 섹슈얼리티의 표준, 다시 말해, 섹슈얼리티가 갖추어야 할 모습으로 정의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관점을 정치적으로 문제적이지 않다고 받아들일 여성주의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대로라면, 정상적 섹슈얼리티는 이성애이고, 따라서, 그것이 가정하는 것은 성차별적인 동시에 이성애중심주의적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어떤 타고난 여성적인 성적 쾌락을 상상하는 것은 꽤나 마음이 끌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타고난 섹슈얼리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가능한 일이다. 분명하게도 그런 섹슈얼리티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와 문화의 바깥 영역에서는 우리는 어떤 것도 개념화할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섹슈얼리티는 항상 사회적 산물이었고, 미래에 어떤 형태의 사회가 나타나게 되던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억압 개념이 가지는 힘은 여성이 성적 영역에서 경험했던 피해와 위험을 잘 살려 말해줄 수 있는 데 있다. 그러나 그런 여성의 경험은 억압(repression)보다는 오히려 탄압(oppression)으로써 표현되는 것이 맞다. 억압이라는 개념은 근원적인 어떤 힘을 잡아놓는 것을 뜻하는 반면, 탄압은 권력과 지배라는 사회관계에 관심을 맞추기 때문이다.

"여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25년간의 논쟁"

여이연 2007 여름강좌
- 섹슈얼리티 I
강사: 박이은실 (여이연)

<강좌 자료>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Feminism and Sexuality) / 스테비 젝슨(Stevi Jackson), 수 스캇(Sue Scott), 1996
"성적인 논쟁지점과 여성주의 내의 분파들: 여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25년간의 논쟁"
번역: 여이연 섹슈얼리티 세미나팀

섹슈얼리티는 여성주의자들에게 핵심적인 정치적 사안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고, 또한, 여성주의자들이 각 분파로 나눠지는 빌미가 되어오기도 했다. 성적 활동과 성적 정체성은 다른 사회보다 서구사회에서 보다 더 논쟁적인 사안이라는 것과 이 사안에 대해 수많은 공적 토론이 서구사회에서 진행되어 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사실이 놀라울 일은 아닐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예를 들어, 스스로의 사적 성행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포르노그래피, 매매춘, 성폭력, 동성애와 레즈비어니즘 등과 같은 공적 사안들에 대해 여성주의 특유의 뚜렷한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한 번도 이에 대한 단일한 입장을 가져보지 못했다. 사실 섹슈얼리티는 19세기부터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각기 다른 의견들이 경합해온 영역이다. 섹슈얼리티가 근대 사회운동에서 주요한 관심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과 동시에 이에 대한 서로 합의될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다른 주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독본을 묶어내는 목적은 197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섹슈얼리티에 관한 다양한 여성주의 논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지면상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여성주의 이론과 정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난 25년간 일어났던 관점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글들을 이 독본에 포함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여기서 토론하고자 하는 사안들에 관해 우리 자신의 의견이 있고, 또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겠지만, 우리와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공정하고 분명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 영역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써왔던 저술의 절대량을 감안할 때 이 독본을 위해 글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판사들의 출판목록을 잠깐 들여다보기만 해도 섹슈얼리티가 이제 특정 학문 안에서건 혹은 학제간에서건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제2세대(the 2nd Wave) 여성주의'의 등장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고, 이러한 관심의 근본적인 취지는 여성해방운동과 게이해방운동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기원을 둔 것이었다. 최근 몇 해 동안 여성주의학자들과 게이학자들은 섹슈얼리티를 학문적인 의제로 만들고, 연구과제, 이론, 강의내용을 개발하는 데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런 새로운 학문적 분위기는 비교적 먼저 나타난 성과학적 전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과학은 섹슈얼리티를 생물학적 혹은 심리학적 현상으로서 다뤘고,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이성애적 규범에 기반해 그것과 다른 섹슈얼리티는 모두 병리적으로 취급하는 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삼아왔다. 최근에는 인간 섹슈얼리티가 사회/문화적으로 모양지어진다는 관점들이 더욱 우선시되고 있다. 이 관점들은 남성주도적인 이성애적 관계를 전혀 이상이 없는 하나의 규범으로서 다루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은 게이 관점보다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우선적으로 취하고, 여성주의적 관점과 게이 관점 사이의 관계가 여성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될 때는 게이 관점도 다룰 것이다.

이 소개글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섹슈얼리티가 여성주의자들에게 정치적 사안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뒤에 나타난 사상의 서로 다른 가닥들도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그전에 먼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을 정의하고 시작해야겠다. 성(sex), 성별(gender), 섹슈얼리티(sexuality)가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합의도 된 것이 없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이 개념들을 종종 구분해서 사용한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성(sex)'과 ’성적(sexual)'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이 개념들은 남녀 사이의 서로 다른 신체적 특성과 친밀한 성애적 행위 둘 다를 가리킨다. 앤 오클리Ann Oakley(글 1.1)는 이 이중적 의미에 대해 짚으면서 친밀한 성애적 행위의 측면에서 성적(sexual)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서로 다른 신체적 특성을 가진 두 성(sexes)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간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오클리는 서구문화에서 흔한 이성애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오클리의 관점처럼 '성(sex)'을 ‘성적 행위(the sex act)'로 정의내리고, 그럼으로써 성을 이성애적 성교로 정의내리는 관점은 많은 다른 여성주의자들이 문제삼아왔던 바로 그 지점이다. ‘섹슈얼리티’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는데, 성애적 욕망, 행위, 정체성을 두루 일컫는 개념이다. 때로 이 말은 스스로에 대해 여자 혹은 남자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는 여자 혹은 남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모든 측면들을 통틀어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성별(gender)’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섹슈얼리티’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삶에서 성애적인 측면을 일컫기 위한 개념이 된다. 이런 면에서,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은 다소 유동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성애적이라는 것, 따라서 성적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 성애적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역겨운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또 어떤 이에게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성애에 관한 여러 서로 다른 견해들은 프로노그래피같은 사안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이 극도로 격렬히 논쟁하게 만들어 왔다. 이렇게 이렇다하고 깔끔하게 정의내리기 힘든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섹슈얼리티가 단지 ‘성행위’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성적인 느낌, 성적인 관계, 다른 사람이 우리를 성적이거나 혹은 성적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방식, 스스로를 성적이거나 혹은 성적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성별(gender)’이라는 개념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타고난 것이라는 생각을 문제삼기위해 여성주의자들이 채택한 개념이다. 때때로 ‘성(sex)'들의 차이는 여자와 남자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를 말하고, ‘성별(gender)'은 여자와 남자를 사회적으로 구분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가리킨다. 모든 여성주의자들이 이 구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물질적인 몸이 가지는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면에 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어떤 이가 신체구조학적으로 특정 성(sex)이다고 보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후자의 관점을 지지한다.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분석적으로 구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두 개념이 실질적으로는 서로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사실, 바로 이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섹슈얼리티가 결정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이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과 여성 의 사회적 특성과 이 사이의 위계적 관계가 우리의 성적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이성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생각같이 다른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성애적 태도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특성과 이 사이의 위계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처럼, 레즈비언과 게이 섹슈얼리티도 넓은 의미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성별과 섹슈얼리티는 ‘인종’과 계급같은 다른 사회적 구분과 교차해서 한 사회 안에서도 우리들 각각은 각각 다른 지점들에서 섹슈얼리티를 영위한다. 따라서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여성들 각각의 경험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과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모든 여성들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목적인 여성운동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은 결정적이고, 상당히 분열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이 되어왔다.
개인적인 것 정치화하기

섹슈얼리티가 왜 주요한 여성주의 사안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조대에서 재산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여성을 일부일처제의 이성애적 관계를 통해 한 남자에게 묶어두기 위해 역사적으로 엄청난 노력이 기울여져 왔다. 이중적 성도덕규범은 여성에게는 부인된 성적 자유를 남성에게 부여해 왔다. 또한 여성들을 존중받을만한 마돈나와 끔찍이 불쾌한 창녀라는 두 범주로 분류해 왔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달리 감시되고 규제되어왔다. 여성 ‘매춘부’는 낙인찍히고 처벌받지만, 그녀가 상대해준 남성 고객은 그렇지 않다. 이성애 행위는 언제나 여성에게는 ‘명예’를 잃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생식력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리거나 하는 식으로 항상 위험한 것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의 성폭력과 강압에 의한 피해를 쉽게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으면서, 한편, 그녀 자신의 행위와 가해자의 행위까지 책임을 지게끔 되어왔다.

제1세대 여성주의자들은 이 중 많은 사안들에 대해 운동해 왔지만, 그들이 택한 운동방식은 제한된 경제적 독립의 기회와 생식에 대한 제한된 자기통제 기회같이 그들이 살고 있던 물적 환경과 만연해 있던 성도덕의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이중적 성규범에 맞서기 위해 즉각적으로 실천가능했던 전략은 여성의 성적 자유를 확장하는 요구보다 남성의 더욱 철저한 정조관념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제2세대 여성주의가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맥락은 매우 달랐다. 제2세대 여성주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여성주의적 관점을 만들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시대에 비해 이례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했고, 더 큰 교육의 기회를 가졌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노동과 교육 양 영역에서 여전히 불이익을 받았고, 여성의 영역은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여전히 굳건했다. 1960년대는 서구에서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완전고용이 이뤄졌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주요한 정치적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경제적 번영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빈곤은 이때 ‘재발견’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소수민족들은 완전한 시민권에서 배제되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 유권자들은 여전히 선거권을 박탈당한 채였다. 이에 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민권 운동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모든 젊은 정치운동가들에게 중요한 훈련장이 되었다. 서구 국가들 전체에서 베트남전 반대와 여러 가지 부정의와 제국주의적인 사례에 대한 저항이 조직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좌파 정치가 부활했다. 1968년 유럽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주의적인 새 사회주의정부를 소련이 진압을 했고, 파리에서는 학생총항쟁과 총파업(general strike)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좌파운동은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여성주의 새로운 세대는 대부분 이 ‘신좌파(New Left)’를 통해 등장했다. 신좌파운동을 통해 정치적이된 많은 여성들은 좌파운동 안에서 남성들이 결정권을 갖는 반면 자신들은 부차적인 보조자 역할을 맡고 조직 안에서 주변화되어왔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형태의 불평등과 싸우는 동안에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은 대부분 간과되었는데, 전적으로 묵살되거나,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거나, ‘혁명 이후’에 해결할 문제로 규정되었다.
‘신좌파’와 ‘구좌파’는 여성이 겪는 억압에 대해 공통적으로 무감각했지만, 다른 여러 측면에서는 서로 달랐다. 결정적으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그러했는데, ‘신좌파’들은 훨씬 더 자유의지주의적 입장을 가졌고, 특히 동구권, 국가사회주의자, 국가 등의 권위주의적 체제에 반대했다. 이와 함께, 사적인 삶의 변화가 바람직하고,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개인의 성취, 쾌락, 자유를 혁명의 정당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 좌파 내부와 외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1960년대의 소위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었다. 이것이 혁명적 변화인지 아니면 단지 기존에 있어왔던 경향이 계속되는 것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 기간에 먹는 피임약 같이 훨씬 더 손쉽게 피임을 할 수 있게 된 것 등 더 큰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예견하는 몇 가지 발전들이 있었다.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성적 사안들에 관계된 허용적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 극장 검열이 폐지되었고, 낙태와 이혼이 자유로와졌으며, 21세 이상 성인 남성간의 합의된 동성애행위가 비범죄화되었다. 전체 대중이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지만, 젊고 독립적이고 정치화된 이들은 성적으로 자유의지주의적인 사고가 대세였던 폭넓은 사회적 맥락의 변화를 충분히 경험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좌파진영 내 여성들에게도 확실히 영향을 미쳤고, 이 후에 진행된 성혁명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좌파 내에서 공유되던 성해방에 대한 새로운 이상과 다양한 반문화운동(counter-cultural movement)은 새로운 자유를 약속했다. 결혼은 사람을 소유관계로 전락시키는 부르주아적 제도로 비난받았고, ‘자유연애(free love)’가 장려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성과 남성을 잠재적으로는 같은 위치에 놓고, 기존의 이중적 성규범에 도전하며, 성그 자체가 즐길만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남녀에게 각각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 많은 여성들이 이때를 되돌아보면서 ‘성해방’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접근기회가 커졌음을 뜻했고, 여성들이 ‘해방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까 하는 걱정으로 남성의 요구에 대해 ‘싫다’라고 말할 권리를 빼앗긴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꼈다. 당시 한 여성주의 만화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들은 나를 불감증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지금은 나를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자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이 좌파 조직들 내에서의 여성과 여성 관련 사안의 주변화에 대한 것과 함께 여성주의적 비평의 동력이 되었다. 마지 피어시Marge Piercy는 그 때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남성은 여성과 함께 잠자리를 가짐으로써 그녀를 조직 안으로 데려올 수도 있고, 그녀와 더 이상 자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조직에서 제거할 수 있다. 남성은 그녀가 지겨워졌다거나, 연습으로 만났다고 하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조직에서 추방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은 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억지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on Committee, 이하 SNCC)의 스토클리 카미챌(Stokely Carmichael)은 공개적으로 ‘SNCC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대주는 (prone) 것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그녀들이 주도하는 독자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섹슈얼리티를 핵심 사안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위 성혁명의 몇몇 결과들이 여성들에게 문제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섹슈얼리티가 정치적 사안이 되는 길을 연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부정적인 결론까지도 저항의 가능성과 대안적이고 여성주의적인 관점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성과 재생산의 분리, 성적 쾌락과 자유에 대한 강조, 결혼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비판 등과 같은 신좌파의 자유의지주의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요소들을 지속시키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남성 섹슈얼리티의 강제적이고 약탈적인 측면을 문제삼아 왔다. 이것은 여성들이 단순히 남성들의 성적 접근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었고, 침대 안이나 밖에서의 남성들과의 관계의 질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성주의자들은 또한 정치적 분석은 반드시 개인적 삶의 방식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신좌파적 견해를 견지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이 보다 더 많은 것을 뜻한다. 여성들은 여성들 개인이 각각 겪는 많은 문제와 불안을 다른 여성들도 공통적으로 겪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 문제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근본적으로 그 문제들은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을 정치적 사안으로 보게 되면서 우리는 정치 자체의 경계를 재규정하게 되었다. 여성들만의 조직(Women-only groups)과 의식화의 실천이 이 과정의 중심에 놓였다. 따라서, 의식화 과정은 자기만족적인 집단적 자기반성 행위가 아니었다. 반대로, 개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목적은 각자의 경험을 모으고, 우리가 공유하는 기반을 찾고, 그것을 정치적 분석과 행동의 토대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기존에 정치적인 공적 영역의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간주되어온 삶의 지점들이 정치적 의제로 놓여졌다. 예를 들어 이제 ‘가사노동의 정치학’ 또는 ‘오르가즘의 정치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되었다. 섹슈얼리티의 여러 측면들이 토론과 분석의 대상으로 자리잡혔다. 여성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이중적 성규범을 공격했고, 섹슈얼리티는 여성에게 나쁜 것이며 오직 ‘나쁜’ 여성만이 성적이라는 관점에 도전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운이 좋아야) 전희 후 삽입이라는 고정된 이성애적 성행태에 한정되지 않는 성적 쾌락의 행태를 경험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남성 욕망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으로 적극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바라 볼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남성과의 강요된 성관계에 대한 여성들 사이의 공통된 경험은 ‘정상적’ 이성애와 강간 사이에 있는 성적 강압과 폭력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게 했다. 여성주의자들은 또한 미인대회, 화보, 포르노그래피 등을 통해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과 매매춘을 통해 섹슈얼리티가 상품화되는 것을 공격적으로 비판했다. 이 모든 것은 이성애적 관습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기여했고, 궁극적으로 이성애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에 기여했다.

이후 여성주의 논쟁의 중심이 된 사안들의 대부분은 여성해방운동(WLM) 등장 이후 몇 년 사이에 이미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성주의 내부의 정치적 차이를 드러나게 한 긴장들 역시 이 시기에 이미 확연히 드러났다. 여성주의자들은 현재의 이성애적 관계가 갖는 질서는 여성에게 해로우며 여성종속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변화를 위해 우선시되어야 할 지점들과 이를 위한 행동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다른 분열된 길들을 따라왔다. 이 책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억압된 것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지에 대한 논쟁, 이성애 여성주의자들과 레즈비언 여성주의자들 사이의 차이들, 쾌락으로서의 성과 권력으로서의 성 사이의 긴장, 포르노그라피와 매매춘을 어느 정도로 여성에게 억압적인가에 논쟁과 같은 몇몇 주요 논쟁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2009년 3월 4일 수요일

자본주의와 게이정체성 / 존 드에밀리오(1983)

Ann, Snitow; Stansell, Christine; Thompson, Sharon(eds.)(1983). Powers of Desires: The Politics of Sexualit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pp.100-113에 있는

John D'Emilio (1983) "Capitalism and Gay Identity" 요약발제문

1960년대 말 미국에서 게이해방운동이 막 일어날 때 게이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전략을 모양짓는데 참조할 수 있을 역사가 없었다. 역사가 없는대신 개인들의 경험에 의존한 신화를 만들겠다는 의도 하에 1960년대에 대다수의 게이 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의 공통된 경험에 의존하기 시작. 이들의 공통된 경험은 이들이 대다수 동성애적 욕망을 유사한 욕망을 가진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채 그런 느낌을 어떻게 부르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발견했다는 것. 이로써 침묵, 바기시성, 고립을 동성애적 삶의 필수적인 특징으로 구성해 냈음. 이 신화는 이후 커밍아웃전략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고 모든 게이/레즈비언들이 커밍아웃을 하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억압도 종식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던 것. 그리고 이는 동시에 동성애혐오와 이성애중심주의가 재생산되는 제도화된 방식들을 간과하게 만들었다.:101
'영원한 동성애(eternal homosexual)'이라는 신화는 1970년대 초기에는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80년대 들어와서는 동성애 혐오적 의료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거나 운동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101
자본(더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돈)의 확장과 임노동의 확산은 핵가족의 구조와 기능, 가족 생활 이데올로기, 이성애적 관계의 의미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가족 내에서의 이 변화들이 집단적 게이 삶의 등장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02
18세기까지 토지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가 주될 때 가족 내 구성원은 생존을 위해 상호 의존적이었다. 가장인 남편이 소유한 땅에 처와 자식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처가 생산해 낸 가내 생산물들로 생활을 하던 자기충족적 경제 시기. 19세기에 들어와 남성들과 여성들은 자기충족적 경제에서 불려나와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인입된다.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임노동을 떠났지만 남성들에게는 영속적인 삶의 조건이 되었다. ... 1800년대 중반에 오면 자본주의는 많은 가족들의 경제적 자기충족체계를 파괴하지만 구성원들의 상호의존성은 그대로 유지된다.:103
가족은 또한 정서적 만족과 행복을 효과적으로 제공해 주는 단위 혹은 기구라는 관념이 등장한다. 1920년대 중산층 백인들 사이에서 가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는 남자와 여자가 만족스럽고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아이들을 양육할 환경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가족은 “개인적 삶”의 틀이 되었고 일과 생산이라는 공적인 세상과는 명백히 구별되고 분리된 것으로 여겨졌다.:103
이성애적 관계의 의미도 달라졌다. 식민지 농업시대에 그것은 곡식을 생산하는 데에 참여할 노동력인 자식을 생산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고 따라서 성행위는 재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때의 개신교들은 이성애가 아니라 결혼을 찬미했다. ... 1970년대에 이르자 출산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동시에 성과 출산은 서로 독립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이제 이성애의 표출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친밀 생성, 행복 추구, 쾌락 경험을 위한 수단이 된다.:104
식민시대에 생존은 핵가족 내의 참여를 중심으로 구조지어졌다. ... 식민지 메사추세츠는 심지어 성인이 가족 단위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을 정도였다.:104 오직 개인들이 임노동을 통해 생계을 잇게 되면서 동성애적 욕망은 (동성애적 행위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 이성애적 가족관계 밖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하고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근간으로 개인적인 삶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한 정체성과 같은 것이 되었다.:104-5
20세기 초에 이미 큰 도시들에는 남성동성애바들이 있었다. ... 레즈비언들 중 남자로 ‘통과되는’ 여자들은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살고 있는 여자와의 생계를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직업을 갖기 위해 그렇게 ‘통과했다’. ... 레즈비언 친구들의 관계망에 의지해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1920-30년대 들어와 뉴욕과 시카고 같은 큰 도시들에는 레즈비언바들이 생겨났다. 이런 삶의 유형들은 자본주의가 가족 안에 제한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05
게이 남성들의 훨씬 높은 가시성은 남성들의 영역이 보다 공적인 데에 있고 여성들이 보다 사적인 데에 있는 탓도 있지만 실제로 그 수가 레즈비언들보다 많다는 것도 시사한다. 1940-50년대에 조사된 킨제이보고서는 동성애 경험을 가진 이들중 결정적으로 레즈비언보다 게이 남성들이 많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가 여성들보다 남성들을 노동력시장과 고임금직종에 훨씬 더 많이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은 쉽사리 이성과이 관계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삶을 구성할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보다 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 채 남아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킨제이는 또한 학교생활과 레즈비언 생활의 관계를 살폈는데 대학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이 노동계급 여성들보다 훨씬 스스로의 생계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남성과의 친밀한 관계없이도 훨씬 쉽게 생존할 수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106
스톤월 이후의 전쟁, 즉, 2차대전은 전통적 성별관계와 섹슈얼리티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면서 일시적이지만 동성애의 표출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 성적 정체성이 형성중에 있던 수 만명의 젊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집을 떠나 GIs, WACs등에서 동성끼리의 생활을 했고 일자리를 찾아 집을 떠나온 여성노동자들은 여자들끼리 사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성애가 대체로 강제되는 틀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다른 이들은 전쟁이 마련해준 일시적 기회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탐구해 볼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 1940년대 게이/레즈비언들은 개척자였다. ... 1950년대와 60년대의 게이 생활은 전국적 현상이 되었다. 1969년 뉴욕에서의 스톤월 항쟁에 이를 때까지 게이들의 삶에서의 침묵, 비가시성, 고립은 거리가 멀었다. 레즈비언, 게이남성들의 공동체들이 존재했기에 스톤월 항쟁 후의 풀뿌리해방운동의 극적인 확산이 가능했던 것이다.:107
자본주의는 임노동자를 만들어냄으로써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의 출현을 도왔다. 그런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신우파는 그러나 ‘친가족주의’를 내세우면서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를 극구 거분한다. 왜일까? 답은 가족에 대한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된 관계 안에 있다. 한편에서 자본주의는 가족 구성원들을 묶어 주었던 핵가족의 경제적 기능을 앗아감으로써 핵가족의 물적 토대를 서서히 침식해 왔다. 자본은 개인의 삶을 위해 가족이 생산해 왔던 많은 것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고 남성들과 여성들을 가족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안에 남아있게 하는 힘이 약화된 것이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가족을 사랑, 애정, 정서적 안정감의 원천으로서, 안정되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충족되는 장소로서 모셔왔다.:108
어떤 사회든 인간재생산과 양육구조를 필요로 한다. ... 사유화된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잘 맞아 떨어진다. 자본주의는 생산물을 사회화했지만 동시에 사회화된 노동의 생산물은 사유재산의 소유자들에게 귀속되는 것은 존속시켰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동양육은 학교, 대중매체, 동호회, 고용주 등이 상당부분 그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상당히 사회화되었으나 자본주의사회는 여전히 재생산과 아동양육을 사적인 일로서 존속시키고 아이들을 아이들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부모들에게 “속한” 것으로 존속시키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이성애적 가족으로 몰아넣고 있고 각 세대는 이성애중심적인 친밀성 유형과 개인들간의 관계를 내면화하면서 성장한다. 물질적으로, 자본주의는 가족을 묶던 틀을 약화시켰고 이로써 행복과 정서적 안정감을 기대하는 곳에서 그들은 점점 더 커지는 불안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가족생활의 물질적 근본을 파괴하면서 레즈비언, 게이남성들,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을 현 체제가 갖는 사회 불안정의 원인으로 희생양삼고 있는 것이다.:109
자본주의는 동성애적 욕망을 개인의 삶에서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표출될 수 있는 물적 조건을 생성해 왔다. 우리의 정치적 운동은 이제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사람들이 훨씬 쉽게 자신들의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 우리는 동성애가 나쁘다거나 열등한 선택이라는 믿음에 도전해야 한다.:109 에로틱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성적 표현을 긍정적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유희의 한 형태로서 긍정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 자본주의는 한편에서 지속적으로 개인이 가족 바깥에서의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 생활의 물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편 또한 남성과 여성들을 가족 안으로 밀어넣어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을 생산하도록 강제할 필요를 가진다. 가족의 숭고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우위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이들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주의와 동성애 혐오도 같이 생산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문제인 것이다.:110
게이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의 삶은 이성애적 핵가족 경계들의 바깥에 있는 사회 지형에 존재한다. ... 따라서 게이/레즈비언들의 삶은 전통적인 이성애적 가족 단위 밖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율을 위한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일들을 해가야 한다. 특히 아이들을 부모에 의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없애고 아이들도 하나의 자율적인 인간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110
현대 가족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개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 그러나 가족이 함께 농사짓고 수공업을 하던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거나 가족이 행복했던 고대의 신화같은 것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생산을 사회화함으로써 가능하게 만든 엄청나게 증대된 생산성을 진보적인 성과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돌보는 탁아소, 사적 생활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주택, 의료기관과 극장이 함께 있는 동네 등 핵가족을 넘어서서 소속감을 주는 삶의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 “마음을 움직이는 공동체(affectional community)”는 우리들의 정치적 운동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