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4일 수요일

자본주의와 게이정체성 / 존 드에밀리오(1983)

Ann, Snitow; Stansell, Christine; Thompson, Sharon(eds.)(1983). Powers of Desires: The Politics of Sexualit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pp.100-113에 있는

John D'Emilio (1983) "Capitalism and Gay Identity" 요약발제문

1960년대 말 미국에서 게이해방운동이 막 일어날 때 게이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전략을 모양짓는데 참조할 수 있을 역사가 없었다. 역사가 없는대신 개인들의 경험에 의존한 신화를 만들겠다는 의도 하에 1960년대에 대다수의 게이 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의 공통된 경험에 의존하기 시작. 이들의 공통된 경험은 이들이 대다수 동성애적 욕망을 유사한 욕망을 가진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채 그런 느낌을 어떻게 부르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발견했다는 것. 이로써 침묵, 바기시성, 고립을 동성애적 삶의 필수적인 특징으로 구성해 냈음. 이 신화는 이후 커밍아웃전략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고 모든 게이/레즈비언들이 커밍아웃을 하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억압도 종식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던 것. 그리고 이는 동시에 동성애혐오와 이성애중심주의가 재생산되는 제도화된 방식들을 간과하게 만들었다.:101
'영원한 동성애(eternal homosexual)'이라는 신화는 1970년대 초기에는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80년대 들어와서는 동성애 혐오적 의료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거나 운동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101
자본(더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돈)의 확장과 임노동의 확산은 핵가족의 구조와 기능, 가족 생활 이데올로기, 이성애적 관계의 의미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가족 내에서의 이 변화들이 집단적 게이 삶의 등장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02
18세기까지 토지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가 주될 때 가족 내 구성원은 생존을 위해 상호 의존적이었다. 가장인 남편이 소유한 땅에 처와 자식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처가 생산해 낸 가내 생산물들로 생활을 하던 자기충족적 경제 시기. 19세기에 들어와 남성들과 여성들은 자기충족적 경제에서 불려나와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인입된다.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임노동을 떠났지만 남성들에게는 영속적인 삶의 조건이 되었다. ... 1800년대 중반에 오면 자본주의는 많은 가족들의 경제적 자기충족체계를 파괴하지만 구성원들의 상호의존성은 그대로 유지된다.:103
가족은 또한 정서적 만족과 행복을 효과적으로 제공해 주는 단위 혹은 기구라는 관념이 등장한다. 1920년대 중산층 백인들 사이에서 가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는 남자와 여자가 만족스럽고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아이들을 양육할 환경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가족은 “개인적 삶”의 틀이 되었고 일과 생산이라는 공적인 세상과는 명백히 구별되고 분리된 것으로 여겨졌다.:103
이성애적 관계의 의미도 달라졌다. 식민지 농업시대에 그것은 곡식을 생산하는 데에 참여할 노동력인 자식을 생산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고 따라서 성행위는 재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때의 개신교들은 이성애가 아니라 결혼을 찬미했다. ... 1970년대에 이르자 출산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동시에 성과 출산은 서로 독립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이제 이성애의 표출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친밀 생성, 행복 추구, 쾌락 경험을 위한 수단이 된다.:104
식민시대에 생존은 핵가족 내의 참여를 중심으로 구조지어졌다. ... 식민지 메사추세츠는 심지어 성인이 가족 단위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을 정도였다.:104 오직 개인들이 임노동을 통해 생계을 잇게 되면서 동성애적 욕망은 (동성애적 행위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 이성애적 가족관계 밖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하고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근간으로 개인적인 삶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한 정체성과 같은 것이 되었다.:104-5
20세기 초에 이미 큰 도시들에는 남성동성애바들이 있었다. ... 레즈비언들 중 남자로 ‘통과되는’ 여자들은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살고 있는 여자와의 생계를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직업을 갖기 위해 그렇게 ‘통과했다’. ... 레즈비언 친구들의 관계망에 의지해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1920-30년대 들어와 뉴욕과 시카고 같은 큰 도시들에는 레즈비언바들이 생겨났다. 이런 삶의 유형들은 자본주의가 가족 안에 제한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05
게이 남성들의 훨씬 높은 가시성은 남성들의 영역이 보다 공적인 데에 있고 여성들이 보다 사적인 데에 있는 탓도 있지만 실제로 그 수가 레즈비언들보다 많다는 것도 시사한다. 1940-50년대에 조사된 킨제이보고서는 동성애 경험을 가진 이들중 결정적으로 레즈비언보다 게이 남성들이 많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가 여성들보다 남성들을 노동력시장과 고임금직종에 훨씬 더 많이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은 쉽사리 이성과이 관계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삶을 구성할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보다 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 채 남아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킨제이는 또한 학교생활과 레즈비언 생활의 관계를 살폈는데 대학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이 노동계급 여성들보다 훨씬 스스로의 생계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남성과의 친밀한 관계없이도 훨씬 쉽게 생존할 수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106
스톤월 이후의 전쟁, 즉, 2차대전은 전통적 성별관계와 섹슈얼리티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면서 일시적이지만 동성애의 표출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 성적 정체성이 형성중에 있던 수 만명의 젊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집을 떠나 GIs, WACs등에서 동성끼리의 생활을 했고 일자리를 찾아 집을 떠나온 여성노동자들은 여자들끼리 사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성애가 대체로 강제되는 틀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동성애 경험이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다른 이들은 전쟁이 마련해준 일시적 기회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탐구해 볼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 1940년대 게이/레즈비언들은 개척자였다. ... 1950년대와 60년대의 게이 생활은 전국적 현상이 되었다. 1969년 뉴욕에서의 스톤월 항쟁에 이를 때까지 게이들의 삶에서의 침묵, 비가시성, 고립은 거리가 멀었다. 레즈비언, 게이남성들의 공동체들이 존재했기에 스톤월 항쟁 후의 풀뿌리해방운동의 극적인 확산이 가능했던 것이다.:107
자본주의는 임노동자를 만들어냄으로써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의 출현을 도왔다. 그런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신우파는 그러나 ‘친가족주의’를 내세우면서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를 극구 거분한다. 왜일까? 답은 가족에 대한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된 관계 안에 있다. 한편에서 자본주의는 가족 구성원들을 묶어 주었던 핵가족의 경제적 기능을 앗아감으로써 핵가족의 물적 토대를 서서히 침식해 왔다. 자본은 개인의 삶을 위해 가족이 생산해 왔던 많은 것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고 남성들과 여성들을 가족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안에 남아있게 하는 힘이 약화된 것이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가족을 사랑, 애정, 정서적 안정감의 원천으로서, 안정되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충족되는 장소로서 모셔왔다.:108
어떤 사회든 인간재생산과 양육구조를 필요로 한다. ... 사유화된 가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잘 맞아 떨어진다. 자본주의는 생산물을 사회화했지만 동시에 사회화된 노동의 생산물은 사유재산의 소유자들에게 귀속되는 것은 존속시켰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동양육은 학교, 대중매체, 동호회, 고용주 등이 상당부분 그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상당히 사회화되었으나 자본주의사회는 여전히 재생산과 아동양육을 사적인 일로서 존속시키고 아이들을 아이들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부모들에게 “속한” 것으로 존속시키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이성애적 가족으로 몰아넣고 있고 각 세대는 이성애중심적인 친밀성 유형과 개인들간의 관계를 내면화하면서 성장한다. 물질적으로, 자본주의는 가족을 묶던 틀을 약화시켰고 이로써 행복과 정서적 안정감을 기대하는 곳에서 그들은 점점 더 커지는 불안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가족생활의 물질적 근본을 파괴하면서 레즈비언, 게이남성들,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을 현 체제가 갖는 사회 불안정의 원인으로 희생양삼고 있는 것이다.:109
자본주의는 동성애적 욕망을 개인의 삶에서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표출될 수 있는 물적 조건을 생성해 왔다. 우리의 정치적 운동은 이제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사람들이 훨씬 쉽게 자신들의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 우리는 동성애가 나쁘다거나 열등한 선택이라는 믿음에 도전해야 한다.:109 에로틱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성적 표현을 긍정적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유희의 한 형태로서 긍정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 자본주의는 한편에서 지속적으로 개인이 가족 바깥에서의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 생활의 물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편 또한 남성과 여성들을 가족 안으로 밀어넣어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을 생산하도록 강제할 필요를 가진다. 가족의 숭고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우위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이들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주의와 동성애 혐오도 같이 생산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문제인 것이다.:110
게이남성들과 레즈비언들의 삶은 이성애적 핵가족 경계들의 바깥에 있는 사회 지형에 존재한다. ... 따라서 게이/레즈비언들의 삶은 전통적인 이성애적 가족 단위 밖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율을 위한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일들을 해가야 한다. 특히 아이들을 부모에 의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없애고 아이들도 하나의 자율적인 인간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110
현대 가족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개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 그러나 가족이 함께 농사짓고 수공업을 하던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거나 가족이 행복했던 고대의 신화같은 것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생산을 사회화함으로써 가능하게 만든 엄청나게 증대된 생산성을 진보적인 성과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동시에 공동체가 함께 돌보는 탁아소, 사적 생활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주택, 의료기관과 극장이 함께 있는 동네 등 핵가족을 넘어서서 소속감을 주는 삶의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 “마음을 움직이는 공동체(affectional community)”는 우리들의 정치적 운동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111